현대미술사 20편|퍼포먼스 아트, 예술가의 행동과 시간이 작품이 되다
현대미술사 20편|퍼포먼스 아트, 예술가의 행동과 시간이 작품이 되다
20세기 후반 현대미술에서는 작품의 범위가 계속 확장되었습니다. 회화와 조각이라는 물체에서 벗어나 장소와 빛, 재료와 관람자의 경험까지 예술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부 예술가들은 한 단계 더 나아가 자신의 신체와 행동 자체를 작품으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퍼포먼스 아트(Performance Art)라고 합니다.
퍼포먼스 아트에서는 완성된 물체보다 특정한 장소에서 일정한 시간 동안 일어나는 행동과 관람자의 경험이 중요합니다.
1. 퍼포먼스 아트란 무엇인가
퍼포먼스 아트는 하나의 고정된 양식이라기보다 예술가의 신체와 행동, 시간과 장소를 작품의 주요 요소로 사용하는 현대미술의 표현방식입니다.
그 뿌리는 미래주의와 다다의 공연, 바우하우스의 무대실험 등 20세기 전반의 여러 전위예술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1950~60년대 이후에는 해프닝(Happening), 플럭서스(Fluxus), 신체미술 등의 실험과 함께 더욱 활발하게 발전했습니다.
작품은 공연이 끝나면 사라질 수도 있으며 사진과 영상, 기록만 남기도 합니다.
2. 앨런 캐프로와 해프닝
앨런 캐프로(Allan Kaprow)는 미술과 일상적인 행동의 경계를 허문 대표적인 작가입니다.
그는 1950년대 후반부터 '해프닝'이라고 불리는 작업을 전개했습니다.
해프닝에서는 정해진 무대 위에서 배우가 공연하고 관객이 객석에서 바라보는 전통적인 구조가 흔들립니다.
관람자가 공간을 이동하거나 작품에 참여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작품은 예술가 혼자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장소와 행동, 관람자의 참여를 통해 완성되는 사건에 가까워집니다.
3. 이브 클랭과 신체의 흔적
프랑스의 이브 클랭(Yves Klein)은 특유의 강렬한 청색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신체와 행위를 이용한 작업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그의 《Anthropometries》 연작에서는 모델의 몸에 청색 안료를 묻혀 신체가 캔버스에 직접 흔적을 남기도록 했습니다.
여기서 신체는 그림의 대상인 동시에 그림을 만드는 도구가 됩니다.
작품의 결과뿐 아니라 작품이 만들어지는 과정과 현장 역시 중요해진 것입니다.
4. 플럭서스와 일상적인 행동
1960년대의 플럭서스(Fluxus) 역시 퍼포먼스 아트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플럭서스 작가들은 음악, 시각예술, 공연과 일상의 행동을 자유롭게 결합했습니다.
백남준, 조지 마키우나스, 오노 요코 등 여러 작가가 이러한 흐름과 관계를 맺었습니다.
거창한 예술행위가 아니라 걷기, 소리 내기, 물건을 움직이는 것과 같은 평범한 행동도 작품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예술과 일상의 경계가 더욱 흐려진 것입니다.
5. 마리나 아브라모비치와 신체
퍼포먼스 아트를 대표하는 작가 가운데 한 명이 마리나 아브라모비치(Marina Abramović)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신체와 시간, 관람자와의 관계를 작품의 핵심으로 사용해 왔습니다.
대표적인 작업에서는 오랜 시간 같은 자세를 유지하거나 관람자와 마주 앉는 등 매우 단순한 행동을 지속하기도 합니다.
물리적인 장치는 많지 않지만 시간과 긴장감, 사람 사이의 거리 자체가 강한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이는 공간에서 반드시 많은 물체가 있어야 강한 경험이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6. 시간도 공간을 변화시킨다
인테리어에서는 평면과 재료처럼 물리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설계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실제 공간은 시간에 따라 계속 달라집니다.
카페는 오전과 저녁의 분위기가 다르고 호텔 로비는 체크인 시간과 심야의 사용방식이 다릅니다.
전시장과 상업공간 역시 행사와 공연, 제품 출시 등에 따라 공간의 역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공간을 설계할 때 한 장면만이 아니라 시간에 따라 공간이 어떻게 사용되는가를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7. 관람자와 작품 사이의 거리
퍼포먼스에서는 예술가와 관람자의 거리가 경험에 큰 영향을 줍니다.
멀리 떨어져 바라보는 것과 바로 앞에서 행동을 경험하는 것은 긴장감이 전혀 다릅니다.
공간디자인에서도 사람과 대상 사이의 거리는 중요합니다.
전시물 앞의 관람거리, 무대와 객석 사이의 거리, 제품과 고객 사이의 접근거리 등이 모두 경험을 변화시킵니다.
따라서 면적만 확보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위치에서 무엇을 보게 되는가까지 계획해야 합니다.
8. 행동을 위한 공간
퍼포먼스 아트와 인테리어가 실제로 만나는 중요한 지점은 공간이 사람의 행동을 수용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전시장에서는 사람이 작품 주변을 이동하고, 매장에서는 제품을 보고 만지며, 카페에서는 주문하고 앉아서 머무릅니다.
따라서 공간을 물체 중심으로 계획하기보다 먼저 행동의 순서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진입 → 이동 → 멈춤 → 관찰 → 참여 → 휴식 → 퇴장
이러한 행동을 먼저 정리하면 필요한 공간과 가구의 위치가 보다 명확해질 수 있습니다.
9. 가변형 공간과 퍼포먼스
행사와 전시가 자주 바뀌는 공간에서는 고정된 인테리어보다 가변성이 중요합니다.
이동식 파티션과 가구, 레일조명, 이동 가능한 전시대 등을 사용하면 하나의 공간을 여러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습니다.
평상시에는 라운지로 사용하다가 행사 때는 좌석을 이동해 공연이나 강연 공간으로 바꿀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은 갤러리, 문화공간, 쇼룸, 팝업스토어 등에 특히 적합합니다.
10. 관람자도 공간을 완성한다
완성된 인테리어 사진에서는 사람이 없는 공간을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실제 공간에서는 사람의 움직임과 행동이 공간의 모습을 계속 변화시킵니다.
의자가 이동하고 사람들이 모이며 통로가 생기고 특정한 장소에 체류가 집중됩니다.
따라서 인테리어는 완성된 순간에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용자가 들어왔을 때 비로소 실제 기능과 경험이 시작됩니다.
퍼포먼스 아트는 이러한 관점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현대미술의 흐름 가운데 하나입니다.
11. 이벤트와 팝업 공간
오늘날 퍼포먼스적인 공간 경험을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분야가 팝업스토어와 브랜드 이벤트입니다.
제품을 단순히 진열하는 대신 방문자가 직접 행동하도록 구성합니다.
제품을 만지고 테스트하거나 특정한 장치를 작동시키고, 공간을 이동하면서 이야기를 경험하도록 만들 수 있습니다.
이때 중요한 것은 화려한 장치의 수가 아니라 방문자가 무엇을 하게 할 것인가입니다.
사용자의 행동 자체가 브랜드 경험의 일부가 되는 것입니다.
12.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퍼포먼스 아트에서 배울 수 있는 것
퍼포먼스 아트는 특정한 인테리어 스타일과 직접 연결되는 미술이 아닙니다.
하지만 공간을 바라보는 중요한 관점을 제공합니다.
첫 번째는 사람의 행동을 먼저 생각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시간에 따른 공간의 변화를 고려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오브제 사이의 거리를 설계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필요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가변성을 확보하는 것입니다.
즉 공간을 완성된 물체가 아니라 계속 사건이 일어나는 장소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실무 TIP
상업공간이나 전시공간의 평면을 계획하기 전에 사용자의 행동을 간단한 동사로 정리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 들어 쇼룸이라면
들어온다 → 발견한다 → 접근한다 → 만진다 → 체험한다 → 상담한다 → 나간다
라는 순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다음 각 행동에 필요한 공간을 배치합니다.
발견하는 지점에는 시야를 확보하고, 체험하는 장소에는 충분한 체류공간을 두며, 상담공간은 주요 동선과 적절히 분리합니다.
행사가 필요한 공간이라면 가구의 이동 가능 여부와 전원 위치, 조명 조절, 수납공간까지 함께 검토해야 합니다.
퍼포먼스 아트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참고할 핵심은 공간을 특이한 무대처럼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에서 사람이 무엇을 하고 어떻게 움직이며 얼마나 머무를 것인지를 디자인하는 것입니다.
퍼포먼스 아트는 현대미술에서 작품의 개념을 물체에서 행동과 시간으로 확장했습니다.
앨런 캐프로의 해프닝에서는 관람자가 작품에 참여했고, 이브 클랭은 신체를 작품 제작과정에 직접 사용했습니다. 플럭서스는 일상적인 행동까지 예술의 영역으로 확장했으며 마리나 아브라모비치는 신체와 시간, 관람자와의 관계 자체를 작품으로 발전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작품은 더 이상 완성된 물체에만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람 + 행동 + 공간 + 시간 + 관람자
가 함께 하나의 경험을 만들어냅니다.
인테리어에서도 이와 마찬가지로 공간을 완성된 이미지로만 바라보기보다 사람이 들어오고 움직이고 머물며 행동하는 과정까지 포함하여 설계하는 관점이 중요합니다.






